노아의 시대나 이 시대나 ‘네피림’의 시대입니다.
네피림이라 함은, 그 어원이 ‘떨어진다’란 뜻의 히브리어 ‘나팔’에서 유래된 것을 근거로 하여,
하늘에서 쫓겨난 타락한 자, 또는 습격하는 자라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하고, 거인, 장부(giants)라는 말로 쓰여 지기도 합니다.
어떤 의미로 쓰여 졌던,
힘의 논리가 세상을 지배하는 이 시대,
거대 권력과 거대 재력을 가지고 힘 있는 자들이 힘없는 자를 무시하고 괴롭히는 이 시대의 배경에는 분명, 눈에 보이지 않으나 인류의 삶을 도적질하고 훔침으로써 재앙과 저주와 죽음으로 몰고 가는 사단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신 할 때,
이 시대 또한 노아의 시대요, 네피림의 시대임이 확실합니다.
그 노아의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침묵을 깨고 대홍수 심판의 준엄한 결단을 내리셨습니다.
사십 일 밤과 낮 동안에 하늘의 모든 창들이 열리고 이 땅의 모든 깊은 샘물이 터져, 온 지면에 흘러 넘쳤습니다.
방주 안으로 들어간 노아의 8식구와 하나님이 지정하신 육축 이외의 모든 생명 있는 것들 모두 - 그 어느 것 하나도 죽음을 면치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류구원의 언약으로 주신 창세기 3장 15절,
여인의 후손 예수그리스도 - 하나님 만나는 유일한 길이시며,
사단의 올무로부터 자유케 하시는 진리이시고,
죽음에서 우리를 건지신 생명이신 그리스도(요한 14:6), 외에는 다른 구원자가 없음을 밝히 말하는,
그 유일성에 대하여 전면 대적하고 나서는 혼합주의(syncretism)를 하나님은 가장 싫어하십니다.
이때 하나님은 공의의 심판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류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 네피림의 주역인 사단과 죄에 대한 심판입니다
그렇다면 말세에 이를 심판에 대비하여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방주를 지었던 노아의 사명은 곧 오늘날 성도의 사명이며 교회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이 사명을 다하기 위해 우리는, 노아와 같이 먼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불감증이 만연하여,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가 어두워져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이 시대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갖는 신분과 권세를 회복하여 삶의 현장 속에서 흑암 세력과 싸움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변질 시키고 그리스도의 권세를 약화시키는 비 진리와,
이단 사이비 종교집단을 분별할 수 있는 통찰력과 분별력을 구해야합니다.
더불어, 하나님을 떠나 두려움에 눌려, 우상을 섬기고 미신에 빠져서,
자꾸만 가중 되는 문제 속에서 현실을 이기지 못하여 정신적 고통과 삶의 무게에 짓눌려 허우적대는, 이 시대를 긍휼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그래서 개인의 종말과 시대의 종말은 물론,
지구의 종말에 대비할 때 우리는 비로소 이 시대, 노아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기위해 주께로부터 부르심을 입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부르심에 응한다고 하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구원의 방주를 짓는 과정 속에서 세밀하게 가르치시고 인도하셨던 하나님,
튼실한 잣나무와 역청으로 넘치는 홍수의 재앙을 막으셨던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때는 하나님이 정하십니다.
노아와 그 가족과 육축의 떼를 방주 안에 넣으시고 문을 닫으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닫아 넣으시니라.” (창 7:16)
모든 주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 믿음 가운데 있기만 하면 의롭다하심을 얻습니다.
우리에게 은혜로 믿음을 주시고 그 기쁘신 뜻을 따라 우리의 믿음대로 행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빌 2:13)
하나님께서 문 여시면 닫을 자 없고, 닫으시면 열 자가 없습니다.
우리의 외로운 싸움에 이와 같은 하나님이 동행하신다는 사실이 우리를 참으로 편안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