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하는 기도의 비밀을 묻는 그대에게 - 스물네 번째 편지
저녁에는 오렌지 빛으로 하늘을 물들인 석양이 하늘을 불태우더니, 어둠이 깊어지면서 청명한 하늘에 완벽한 원을 그린 보름달이 나무그늘을 드리우는 밤입니다.
이제는 낯 설은 땅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이곳, 애틀랜타에서 바라보는 저토록 화사한 보름달이, 서울의 빌딩 숲 사이로 겨우 보았던 바로 그 애처로운 초생달이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겉옷만 걸친 채 잠시 달빛 어린 길을 걸으며 그리운 이름들을 떠 올렸습니다.
그대 평안 하시다구요.
뉴욕 테러 사건 이후로 눈에 띄게 많아진 성조기들이 이들의 애국심을 말해주는 가운데 무조건 이방인의 체취만 풍기면 막무가내로 짐을 뒤지는 그들의 무례한(?) 행동마저도 조금은 용서가 되는 것은, 아주 가까운 사람들 속에서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린 슬픔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보스턴에서 만난 바바라는 혈육으로 남아있는 여 동생과 조카를 테러의 희생 양으로 잃고 슬퍼하다가 며칠 전에야 뉴욕의 한 병원에서 무의식 상태에 빠져있는 여동생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왜 우리를 미워하느냐고 묻는 그들에게, 복음의 귀중함을 잃어버리고 물질만능주의에 빠져있는 미국을 향한 하나님의 웨이컵 콜(wake-up call) 일 것이라고, 싸늘하고 정확하게 말해주었다가,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하여 하바드 박사학위도, 좋은 일자리도 버리고 아동병원에서 힘겹게 일하는 바바라의 눈물 앞에서 그만 움찔해지고 말았습니다.
보스턴의 로간 비행장에서 무차별하게 짐을 뒤지는 그들의 만행(?)에 잠시 우울했던 마음이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솜사탕처럼 부드러워진 것은 아마도 챨스강 저편 하늘에서부터 두둥실 떠오는 뭉게구름 때문만이 아니라 어느새 보스턴을 따뜻한 곳으로 만들어준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 어린 배웅 때문인 것 같습니다.
챨스 강의 끝 쪽 어귀와 바다가 만나는 듯한 곳에 자리한 로간 비행장의 하늘에는 한가로이 물새들이 날고 싱그럽게 달리는 수상보트 저편 하늘에는 은빛 날개를 반짝이며 착륙을 시도하는 비행기가 보입니다.
인간이 만든 것 중에 가장 매력적인 것을 손꼽으라 한다면 아마도 비행기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새처럼 날아보려는 인간의 꿈이 실현된 과학의 아름다운 열매가 아니겠는지요.
육중한 쇳덩이가 새처럼 가벼이 날을 수 있다는 그 사실에 경이롭기도 하지만 그 날렵한 몸매로 활주로를 미끌어지듯 달리다가 하늘을 향하여 포효하듯 날아오르는 그 위용에 이끌리는 환희 때문에 난 비행기를 좋아 합니다.
이 천년 전에 땅 끝까지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지상명령 속에는, 라이트형제에게 새처럼 날아보고 싶어 하는 꿈을 심어주고 그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지혜와 인내의 힘을 허락하실 그 분의 계획이 이미 숨겨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상상해 보는 것은 더욱 즐거운 일입니다.
비행기 이야기로 어설피 서두를 열은 것은, 이제 서울을 향해 다시 비행기를 타야할 시간을 겨우 다섯 시간 남짓 남겨 놓았기 때문입니다.
바삐 돌아가는 일정 속에서 미루어진 답신을 황망한 마음으로 적어 내리는 것은 기도하고 싶어 하고 승리하고 싶어 하는 그대의 열정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게 되니 호흡처럼 귀중하게 느껴지는 사랑하는 이와의 대화가 바로 기도가 아니겠느냐는 그대의 서신에서 이제는, 그대 영혼의 귀중한 자리를 차지한 복음의 위대성을 다시 한번 확인 할 수 있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대, 바울이 말했던 그 영적인 기도의 의미가 무엇이며, 그 영적인 기도로만 승리할 수 있다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 물어오셨지요.
자신이 처한 환경과 상관없이 세상이 줄 수 없는 그 평안과 행복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오늘의 삶 속에서, 시간이 갈수록 그 기도의 비밀 속으로 몰입하고 싶으시다고 더불어 적고 계시더군요.
그렇습니다.
기도라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 부담을 주는 생활의 스케줄이 아니라 생명을 주는 자연스런 호흡입니다.
숨을 쉬어야겠다고 꼭 계획을 해야 된다거나, 억지로 숨을 쉬기 위해 무엇인지 안간힘을 써야한다면 그것은 이미 건강한 사람이 아님을 말해 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는, 아니 나아가서는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는 그 증거의 하나가 바로 자신이 의식하지도 못할 만큼 자연스레 이어지는 호흡이 아니겠는지요.
이렇듯 숨을 쉬듯 자연스레 이어지는 기도가 바로 무시기도(Continued Prayer)이고, 이 무시기도야 말로 삶의 현장 속에서 악한 세력을 이기는 영적인 힘(divine power)을 공급하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고린도후서 10:3-5)으로 역사하는 영적인 기도는, 우리에게 오는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말한 그 견고한 진(strongholds)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일까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이론과 그리스도께 복종하지 않는 모든 생각,
예컨대 철학과 헛된 속임수,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는 사상(골로새서 2:8) 등은,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하는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아서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힘이 아니고는 무너질 수 없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고린도 지역은 국제적인 항구도시로서 물질의 풍요 속에서 음란과 퇴폐의 온상이 되었을 뿐 아니라 금권주의와 우상문화가 정신세계를 장악하고 있어 사랑의 여신이라 칭하는 아프로디테 즉 비너스를 섬기는 거대한 사원이 있어서 타락을 부추겼다고 합니다.
고린도 교회가 가진 부도덕의 문제는 단순한 윤리, 도덕적 차원에 바탕을 둔 지역적으로 시대적으로 그리고 유전적으로 체질화되어 있던 우상과 음란, 분쟁과 당 짓기 등으로 표출된 인간적이고 육신 적인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데에 깊이 뿌리를 두고 내려오는 행악의 대물림이었습니다.
물질의 풍요와 문화의 발전, 그리고 이론과 철학의 무성함 속에서 할로윈이라는 이상야릇한 날을 만들어 귀신놀이에 정성을 쏟으면서도 전혀 무감각한 이들이 사는 미국 땅에서 더욱 처절하게 실감되어 오는 것은,
사탄의 궤계와 세상문화의 유혹, 그리고 자신의 내면을 파고드는 분쟁과 시기 탐욕 온갖 악한 마음들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이 영적인 기도의 위력을 잠시 잠깐이라도 잊었다가는 그만 실패하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를 힘입은 이 영적인 기도만이 내 개인의 삶을 승리로 이끌 뿐만 아니라 가정의 평화와 안위까지도,
나아가서는 걸음마다 이어지는 만남 속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살아서 움직이며 지금도 만남과 삶의 현장을 파괴하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사탄은 우리의 귓전에 너무나 부드럽고 합리적인 소리로 속삭입니다.
기도해 보았자 필요 없다고,
기도보다는 뭔가 열심히 노력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우리를 혼미케 합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대로 세상의 초등학문이나 육신적인 문제는 열심히 해결할 수 있지만 우리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영적인 문제는 영적인 힘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지요.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종말로 여러분이 주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기를 간구 합니다"라고 그의 서신에서 적고 있습니다.
또한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강하게 무장된 전신갑주를 취하라고 당부하면서(에베소서 6:11)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정사와 권세와 이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함이라고 부연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6:12)
따라서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the flaming arrows)을 소멸하라고 부탁합니다.(에베소서 6:16)
이제는 사실적이고 실제적으로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성령충만한 힘은,
만물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겸손히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리스도의 은혜와,
영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
즉 임마누엘로부터 오는 힘입니다.
그 힘은 하늘 보좌의 능력,
즉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위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보내시는 하늘군대, 천군 천사의 위력을 믿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군사 되어 사탄의 견고한 진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이야말로 바로 승리하는 기도이며 영적인 기도가 아니겠는지요.
그대, 그리운 마음으로 총총히 이 글을 마무리합니다.
서울 하늘아래서 기다리고 있을 그대를 상상하며 짐을 꾸리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사랑합니다.
애틀랜타에서 시월 마지막 새벽에
그대를 사랑하는 이로부터
답신을 기다리며
- k. y.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