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째 편지를 보내며...
아홉 번째 편지를 보내며...
어두움, 그 보이지 않는 실체에 대해 묻는 그대에게
마하트마 간디는 여행을 통해서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종교분쟁으로 이웃과 원수 되어 싸우고, 영국의 노예로 허덕이는 인도의 온 민족을 사랑과 긍휼로 품었던 그의 고백이 아니더라도,
낯선 땅, 낯선 곳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의 삶이 전혀 낯설지 않은 모습으로,
아니 너무나 근본적인 닮은꼴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속에서 새삼스레 강한 동질의식을 느끼며 확인되는 인생의 진리는,
온 세상 땅 끝까지 모든 영혼을 품을 수 있을 것 같은 소원을 품게 합니다.
해변 길 따라 진분홍 무궁화 꽃이 나팔 부는 어린애처럼 생기 넘치는 화사함으로 줄지어 꽃피우고
안개 속에 살포시 묻힌 작은 섬들이 물 안개 너머로 아련히 비추이는 남해의 푸른 바다, 육지에 연이은 진도 땅.
섬 같지 않은 섬의 외진 길에서 만난, 땡볕에 검게 물든 아낙네의 골진 주름살에서,
금방이라도 진도아리랑의 구슬픈 노랫가락이 한 맺혀 터져 나올 것 같아,
"이렇게 살다 그저 죽으면 억울하지 않겠느냐"며 오열하고 싶었던 그 느낌이나,
육신적인 쾌락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라면 그 무엇이라도 준비되어 있는 듯한 일본 땅,
오사카의 광적인 네온사인 밑으로 허연 탈을 뒤집어 쓴 것처럼 분을 바르고 어설피 기모노를 걸친 채,
억지 미소 띄우며 힘겹게 서서 지나 쳐가는 뭇 남성을 부르는,
대한민국 아닌 또 하나 일본 속의 한국여인을 만났을 때의 그 느낌이 다를 바 없는 걸 보면
여행이 주는 교훈이라는 게 결국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하나님 떠난 인생은 한결같이 물 떠난 물고기 마냥 그저 헐떡거리며 갈증 나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서울의 어스름한 순환도로를 달려 현관 앞에 들어서자마자 받아 든 그대의 답신을 대하는 순간,
그대의 강렬하면서도 절박한 호흡을 느꼈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을 괴롭혔던 우울한 생각과 배신감,
삶을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 순간의 절망들이 결국 보이지 않는 세계의 어두움,
사탄이라고 일컫는, 살아있는 실체였느냐는 그대의 질문 속에서 비로소 영적인 세계에 눈을 뜨고 있는 그대의 영혼이 깊숙이 느껴져,
미처 여행가방을 풀기도 전에 황망히 펜을 들었습니다.
진도 앞 바다의 소금 내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일본에 갔었습니다.
동경에서 그리고 오사카의 며칠간은 많은 것을 보고 느끼게 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사람의 체온보다 훨씬 더 높은 체감온도의 폭염 속에서 눅눅한 바닷바람이 도시를 휘도는 오사카,
도돔바리(Dohtombari) 강을 끼고 형성된 상가와 술집들은 광기로 번들거리고 있었습니다.
오직 돈과 쾌락과 세상문화의 노예가 되어 다리목마다 질펀하게 앉아있는 청소년들의 눈동자나,
개 한 마리를 끌고 쓰레기통을 뒤지는 홈리스(Homeless)들의 눈동자나 풀어져있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이 펼쳐 놓고 손님을 부르는 그림들이 또한 가관입니다.
자기 다리를 잘라 피가 뚝뚝 흐르는 채 먹고 있는 그림들, 자기 손에 대못을 박고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을 클로즈업(Close-up)시킨 그림들도 놀랍지만,
수십 마리의 뱀이 엉클어진 부적을 팔고있는 청소년들을 바라보며 어찌 이 땅에 어두움의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괴기스러운 고양이들이 어슬렁거리며 지린내를 풍겨대는 법선사 라는 절이 그 화려한 술집의 한 복판에 들어앉아 있는 것도 놀랍지만,
잘 차려 입은 하이칼라들이 잠시만 맡아도 머릿속이 지끈거리는 향불 연기에 묻혀 머리를 조아리며 자녀들의 복을 비는 모습 속에서 경제대국의 영적 무지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이 어둠의 실체 - 원래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아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아름다운 영적 존재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려야 할 인간들을 하나님과 이간하여 불순종을 유도하고 분리시킨
- 그 사탄의 실체는 비단 집단이나 문화 속에만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의 삶에도 교묘히 파고들어 그 영혼을 황폐화 시키고 그의 운명을 완전한 실패로 이끕니다.
언젠가 그대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미술분야에서는 한국의 내로라 하는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에서 참으로 받기 어렵다는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그녀는 불교미술을 전공하는 최고의 엘리트였습니다.
착하디 착해 보이는 동글 한 그녀의 얼굴과 고운 눈매도 인상적이었지만 더욱 마음을 끌었던 것은 어두운 그녀의 눈빛이었습니다!
단 한번이라도 평온한 잠을 자는 것이 소원인 그녀는 십 수년 간 불면증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밤이면 실제로 찾아오는 어두운 그림자가 눈을 감지도 못하게 하고 뜨지도 못하게 괴롭힌다니 가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인지요.
학창시절에 교회도 다녔지만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기(氣)수련장에서 6년을 훈련 받았다고 합니다.
마침 기공을 하는 교수들의 권유를 받아 날이면 날마다 육자진언(六字眞言) "옴마니 반메훔"이라는 주문을 외었다고 합니다. 배꼽에 기(氣)를 모아 온몸에 기를 보내는 그 수련으로 잔병은 고쳐진다는데 그녀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진짜 큰 귀신을 부르는 것 같아요.
'옴'이라는 뜻이 산스크리트어로 우주와 천체를 상징한다고 하니까요.
큰 귀신 불러서 작은 귀신 쫓는 것이겠죠.
좋아지기는커녕, 이제 생각해보니 더 크고 어두운 수렁으로 저를 끌고 가 완전히 어둠의 노예로 만든 것 같아요."
박사의 말이라고 믿기엔 너무도 추상적이고 비과학적이지 않는지요.
그러나 이것이 사실(Fact)입니다.
바다가 갈라지는 신비의 땅이라 해서 대한민국 무당들이 총집결 한다는 진도는,
뽕 할머니라는 허구의 우상을 타고 내려오는 사탄, 즉 귀신, 잡신들의 어두움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구석구석 동네마다 정신병자, 불구자, 알코올 중독자가 심각하게 박혀있고 악에 받친 사람들이 세끼 밥에 묶여 서로 다투며, 꿈을 잃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영적인 사실을 전혀 모르는 모 교회의 목사님은 무면허 운전에 동네 정신병자를 치어 죽이고서는 수감 중이었고 교회는 손가락질 받으며 사모님은 어린애들과 힘들게 살고있었습니다.
학문과 지식, 경제와 사회, 문화와 가정, 개인 속에 교묘하게 침투하여 완전히 실패 속으로 이끄는 존재,
그 어두움은 특히 생각과 마음에 또아리를 틀고 한 개인을 파괴시킵니다.
이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내어쫓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12:28)"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고 개인의 삶에, 가정 속에 천국이 올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 있는 이름을 힘입어 사탄과 싸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특이할 만한 것은 이 말씀을, 자칭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말하는 유대인, 서기관,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 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교회는 다녀도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은 믿어도 영적 사실과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를 모르는 이들에 대한 경고이지 싶습니다.
보이지 않는 영적인 어두움,
보이지 않는 만큼 글로 표현하기엔 어렵군요.
이후로도 좀더 긴밀한 만남을 가지고 많은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여행 속에서, 만남 속에서 수많은 이야기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리며 총총히 펜을 놓습니다.
2000. 8. 10
답신을 기다리며
그대의 영혼을 사랑하는 이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