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was so good, so very good!
오, 아름다운 사람이여!
It
was so good, so very good!
오월을 보내고 유월이 왔습니다.
보랏빛 포도송이 같은 꽃들을 다롱다롱 매달은 등나무 꽃
아래,
성글게 엮인 나무벤취에 잠시 몸을 누이면,
촘촘히 피어난 꽃들로 뒤덮힌 보라색 꽃하늘이 또 하나 열립니다.
가장 단순하고 평범한 것이라도 우리의 삶에 첫 경험으로 다가올 때는 새롭고 경이로운
것으로 다가오듯이,
늘 보고 지나치는 등나무 꽃이라도 서서 바라보는 것하고
누워서 바라보는 그것이 너무나 달라서 놀랍니다.
세상은 이렇게...,
조금만 여유로운 마음으로 들여다보면, 온갖 경이로운 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유월 장미의 향기로움과 꽃가루 나르는 작은 꿀벌들의 쉬지 않는 날개 짓,
그 독특한 향기와 쉼 없는 힘을 불어 넣으시는 하나님의 신묘막측(神妙莫測)함 앞에서 우리는 경외의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랜 세월 고행의 길을 걸으며 진리를 찾아 헤맸던 성철 스님이,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라고 말했던 것도 어쩌면,
창조주 하나님을 모르고서는 도저히 그 존재의 비밀을 풀 수가 없어
‘그냥 있는 그대로 있는 것’이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를 묻는 제자승에게
‘이놈아 내가 진리를 깨달았으면 벌써 산에서 내려갔지 여기에 있겠느냐’ 라고 했었다는 일화는,
어찌 보면 하나님, 곧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요한복음 14:6, 8:31-32절)를 모르는 인간으로서 가장 진솔하고 지혜로운 답변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산과 물의 생성과정은 물론 나아가서는,
날개보다 훨씬 더 크고 통통한 몸집으로 날기 위해 1분에 200 번 가까이나 날개 짓을 하고도 지치지 않는 꿀벌들의 존재 의미와 창조 원리를 명쾌하고 단순한 진리로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세기 1장 9-25절)
하나님의 장엄한 창조의 역사는 육 일간 계속됩니다.
창세기를 기록한 모세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하나님의 시간표로 여러
신학자들의 구구한 시간 계산법에 대해 단호하게 말합니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 째 날이라.”(It was evening, it was
morning - Day one)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었다는 말은 모든 창조물이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질서대로 지어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시간의 주인이시며, 시간 속에 존재하는 모든 창조물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아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고
있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바울 성경 씨리즈 창세기 18p 3줄 참조: 도서출판 바울)
청명한 하늘과 기름진 땅위로 온갖 아름다운 꽃들과 과실과, 씨 맺는 채소들과 나무들을,
그리고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깃이 고운 각종 새들...,
바다에서 헤엄치는 색색 모양의 물고기들...,
그리고 생명력이 넘치는 에덴에서 흐르는 네 강줄기는 정금으로 빛났습니다.
이 모든 피조물 위에 가장 아름다운 창조물이 탄생 되었으니...,
바로 ‘사람’ 입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은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 속에서,
그 어느 피조물 보다 복 받은 존재로,
그리고 이 땅에 존재하는 다른 피조물들을 다스리는 존재로 지음 받았습니다.(창세기 1장 26-28절)
이 땅에서 번성하고 충만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최고의 가치 있는 존재로 지음 받은
것입니다.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은 감탄하셨습니다.
“It was so good, so very good!"(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다고 하는 것은 인간이 곧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의 가장 소중한 자녀로
지음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소위, 우리가 즐겨 말하는 만물의 영장이라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날, 자신의 운명을 동물과
썩어질 버러지의 형상으로 바꾸어,
개띠, 소띠, 말띠대로 살고,
삶은 돼지 머리에 절까지 하며 팔자 바꾸기를 서슴치 않으니 여간 한심한 일이 아닙니다.
심지어는 살아있는 닭을 산채로 죽여서 죽은 조상귀신을 달래고 한을 푸는 무당들의 행태는,
창조 이전에 이미 하나님을 대적하여 이 땅에 떨어져 천하를 꾀는 옛 뱀,
곧 큰 용으로서(요한계시록 12장 7-9절) 인간 세상에 어둠과 혼돈과 공허를 가져온 사단, 마귀, 귀신을 설명하지 않고는,
어떤 종교와 철학으로도 해석할 수없는 행위입니다.
이 세상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하나님,
곧 그리스도의 광채 앞에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후서 4장 4절)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상은 에덴입니다.
이는 헬라어로 ‘파라다이스’인데 환희, 기쁨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사람을 창조하시고 에덴에 두신 하나님의 의도는 하나님과 사람, 서로에게 기쁨이 넘치기를 소망하셨습니다.
이 기쁨은 단순한 진리에서 시작됩니다.
물고기가 물속에 살아야 생명이 있고
답답하지 않습니다.
새는 공중을 날아야 자유하며 노래할 수 있습니다.
나무는 땅에 뿌리를 내려야 잎도 피고 꽃도 피며 열매를
맺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숨결을 불어 넣어 영적인 존재로 지음 받은 우리 인간은 영이신 하나님과 함께
있어야 기쁨과 생명을 동시에 누립니다.(창세기 2장 7절)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는 순간, 인간은 뿌리 뽑혀진 나무처럼 시들고 말라비틀어져 아무리 몸부림
치고 열심히 살아 보아도 보람도 없고 열매도 없어 허무하기만 합니다.
살아있는 것 같으나 사실은 죽어 있는 것이지요.
성경은 하나님을 떠난 우리의 영이 이미 사망 상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에베소서 2장 1절)
또한, 물 떠난 물고기처럼 늘 목마르고 애가 탑니다.
그래서 우물가 사마리아 여인은 남편을 다섯이나 두었지만,
창조주 하나님의 영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 까지는,
어떤 행복이나 만족함 없이 수치심과 죄의식 가운데 살아야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 떠난 인간은 너무나 가엾게도 새 장에 갇힌 새처럼,
자유도 없이 뭔가에 묶여 무기력 가운데 노예처럼 살아갑니다.
돈에 묶이고 인간관계에 눌리며 염려와 근심과 두려움 가운데 미래에 대한 소망도 없이 막연하게
살아갑니다.
이런 인간의 모습에 대해 성경은 마귀에게 눌렸다고 말합니다.(사도행전 10장 38절)
이 모든 문제는 하나님을 떠날 때 생긴 문제이기
때문에, 그저 하나님을 만나면 해결됩니다.
그 만나는 유일한 길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을 우리의 영혼에 영접하면 우리는 곧바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창세로부터 받은 모든 축복과 권세가 회복됩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 사도행전 4장 12절)
이 단순 명쾌한 생명원리와 창조원리를 모르는 인간들이 몸부림치며 만들어 낸 것이 종교이고
철학이며 미신입니다.
그러나 태초에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그 영광 본체를 버리고 참 빛,
곧 태초에 생명의 빛으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셔서(요한복음 1장 1-14절),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지금 성령으로 함께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영혼의 주인이 되어 주실 때,
우리는, 사람을 아름답게 지으시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감격하셨던 창조주 하나님의 음성을 다시 들을 수 있습니다.
“It is so good, so very
good!"
K.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