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래 이어질 편지

눈을 들어 하늘의 뭇별을 바라보라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맺어진 언약


전 인류역사를 총망라하여 최고의 낭만주의자(romanticist)를 꼽으라면 아마 하나님이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대를 이을 상속자도 없는데 무슨 상급이냐고 대드는 아브라함의 불신앙을 나무라지 않으시고 그의 손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 칠흑 같이 어두운 밤하늘에 보석을 흩뿌려 놓은 듯, 총총히 박힌 별무리들을 가리키시며, 말씀 하십니다.

 

 

“아브라함아 눈을 들어 저 하늘을 바라 보거라,
그리고 저 별들을 세어 보아라. 네가 셀 수 있겠느냐?
앞으로 네 자손이 저 별무리들처럼 창대케 될 것이다.”  - (창 15:5) -
 

아브라함(엄밀히 말하면 아브람-열국의 아버지라는 의미의 아브라함으로 바뀌어 지기 전, 그의 이름은 단순히 큰 아버지를 뜻하는 아브람이었음)은 하나님께서 이미 그의 인생에 방패요 상급이 되어 주실 것을 약속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몸에서 날 후계자가 없는 현실을 보라며 하나님께 따지고 듭니다.
 

게다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무시한 채, 자신의 기준과 방법으로 대책까지 그럴 듯하게 세웁니다.
 
다름 아닌, 자신의 종에 불과한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겠다고 오기를 부립니다.
 
(Abram said, God, Master, what use are your gifts as long as I'm childless and Eliezer of Damascus is going to inherit everything?"
Abram continued, "See, you've given me no children, and now a mere house servant is going to get it all."-The Message)
 

그런 아브라함을 하나님은 질책하지 않으시고, 그의 손을 이끌어 아름다운 밤하늘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때 아브라함의 마음이 터질 듯 감격스러웠을 것입니다.
  
이를 증명하는 것은 바로 아브라함의 태도입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 (창 15:6) -

 
원래 의미는 이렇습니다.
 
“그가 믿었다! 하나님을 믿었다!”
 
(he believed! Believed God! - The Message)
 

그의 벅찬 신앙 고백을 들으신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최고의 낭만주의자 하나님께서는, 그의 얄미운 일 초 전(?) 불신앙도 기억하지 아니하시고 곧 바로 아브람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의로운 자
(Set-Right-with-God)로 인정해 주십니다.

원래 불신앙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과 영혼 속에 담지 않음으로 해서 오는 것입니다.
  
아브람이 바라 본 현실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나이는 많은데 자식이 없는 그의 현실은 너무나 맞는 사실이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때로 현실과는 거리가 멀기도 하고, 사실이 되기에는 논리에도 맞지 않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모든 것들이 실상임을 믿는 것과, 하나님은 존재하시며 우리를 향한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이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지 않을 때 우리의 생각 속에 가라지를 뿌리는 원수가 찾아온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 (마13:25) -
 
이 생각들을 사로잡아 그리스도 앞에 복종시키는 것이 영적 전투입니다.
 
 

우리들이 생각하고 분석하며 계획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하나님 떠나서 형성된 자아로부터 출발한 것입니다.
 

염려 걱정 두려움 의심 다툼의 기질과 체질들은 끊임없이 문제들을 생산해 냅니다.

그래서 문제 쫓아다니며 해결해 보려고 몸부림치다가 시간 낭비, 힘 낭비, 돈 낭비, 감정낭비…, 급기야는 미래를 위한 준비도 하지 못 한 채, 인생의 비참한 결과를 맞이하게 됩니다.

어쨌든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는 또 하나의 약속을 주시는데 메시아가 날 땅 가나안을 그의 손에 붙이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러자 단순 기질 형의 아브람, 또 현실 바라보며 하나님께 묻습니다.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 ( 창 15:8) -
 

그도 그럴 것이 가나안 땅에는 겐, 그니스, 갓몬, 브리스 족속 뿐 아니라, 성질이 사악하여 파괴를 일삼기로 유명한 아모리 족속 등 이미 여러 족속들이 진을 치고 있었으므로 두려움이 그를 사로잡았을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께서는 또 한 번의 명확한 방법으로 약속을 확인해 주십니다.
 

하나님께 드릴 번제물, 곧 삼 년 된 암소와 암염소와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를 취하여 언약 예식을 치룰 것을 명령하신 것입니다.

아브람이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제물의 중간을 쪼개고 마주 대하여 놓았다 하는 것은 그 때 당시, 고대의 언약 체결 방법이었다고 합니다.
 

언약(계약)을 가리키는 말은 히브리어로 ‘베리트’인데 본래 이 말은 ‘자른다(cut)'는 뜻이 있습니다.(바울 성경 연구 씨리즈 중에서)

이 언약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 진 계약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보자로 오신 그리스도의 보혈 없이,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메시아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구원자로 오실 그리스도는 반드시 가나안에 오셔야만 했던 것이 하나님의 백퍼센트 당위성입니다.
 
 

그 준비를 위해 아브람이 가나안을 유업으로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축복입니다.

아무 공로 없이,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아브라함은 그의 불신앙의 벽을 넘는 믿음을 은혜로 누립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는 반드시 해방과 자유와 누림이 있습니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에 대하여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차 분깃으로 받을 땅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디로 가는지를 알 지 못하였지만, 떠난 것입니다.
 
믿음으로 그는, 마치 타국에서와 같이 약속의 땅에서 거류하며 같은 약속을 함께 물려받은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설계하시고 세우실, 튼튼한 기초를 가진 도시를 바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히브리서 11장 8-10절 표준 새 번역) -
 


이와 같이 우리도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돌이켜 그리스도의 언약을 붙잡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지나간 불신앙과 상관없이 우리를 통해 언약을 성취시키십니다.

 
그리스도의 언약을 붙잡는다 함은,
 
마귀의 일을 멸하신 왕 되신 그리스도,
 
죄와 사망의 법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우리를 해방 시키신 참 제사장 그리스도,
 
그리고 하나님 떠나서 우리에게 다가온 운명적 저주를 끊기 위해 하나님 만나는 참된 길, 선지자로 오신 그리스도,
 
그 이름의 권세를 우리의 삶에 사실적으로 적용시키고 사실화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권세를 사실화하기로 결단한 것이 맞다면, 지금부터 우리 안에 내재 된 모든 불신앙을 사로잡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꺾어 버려야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예수님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마태는 성경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 (마태복음 12장 28-30) -
 
 

 

- k. y. 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