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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이어질 편지

라스트 사무라이를 보셨는지요..

눈에 보이는 것을 現實이라 하고,

감추어져 있는 본래의 모습을 事實이라 합니다.

그대가 아직 못 보았다 해서 그것이 없는 것은 아니랍니다.

 

 

라스트 사무라이’는 ‘가을의 전설’, ‘아이엠 샘’ 등을 감독한 에드워드 즈윅의 작품의 서사적 액션물로 톰 크루즈가 주연을 맡고 있다.

알그랜 대위는 남북 전쟁후의 사회 체제로부터 명성을 박탈당한 채 공허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술에 묻혀 세월을 보내던 중 일본 군대의 신식 조련사 자격으로 일본에 오게 된다.

19세기 후반 메이지 천황시대의 개혁으로 일본은 발 빠르게 서구 문물을 받아들여 자신의 이익과 가문의 부를 축적시키던 개혁파와 전통과 가치, 사무라이 정신없는 삶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수구파 두 세력이 대립하고 있는 상태.

사무라이 저항군과의 싸움에서 포로로 잡힌 알그랜은 사무라이의 자연과 함께 하는 자신들만의 세계, 동료와 가족에 대한 지극한 애정, 그들을 지배하는 철저한 예의와 도덕, 무엇보다 서양인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에 끌리게 되고 포로에서 풀려난 뒤 오히려 그들을 위해 정부군을 상대로 공격 선봉에 서게 된다.

결국, 사무라이들은 일본의 신식 군대와 맞서 싸우다 모두 장렬히 전사하게 되나, 살아남은 알그랜은 자신이 처음으로 영혼의 안식을 얻게 된 사무라이의 마을로 돌아간다.



사무라이는 ‘가까이에서 섬긴다’는 뜻에서 나온 말로, 본래 귀인을 가까이에서 모시며 이를 경호하는 사람을 말한다.

사무라이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여야만 무사로서의 자기 가치를 드러낼 수 있었기 때문에 자기 몸조차 사르는 광폭함을 미덕으로 삼고 불교의 윤회 사상과 선(禪)의 힘을 빌려 자신의 죽음에 초연해지고자 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할복은 죽음을 기꺼히 받아들이는 사무라이의 정신을 극명히 드러내 보여주는 행위였다.



사단은 이 영화를 통해 강력한 영적 메시지인 선(禪) 사상을 도처에 깔고 있다.

영화 속에서 사무라이 주군 가츠모토의 거처는 신사였으며, 그는 늘 참선이나 염불을 외우고 있다.

이것은 한 집단의 지도자는 결국 영적 배경을 가지고 집단을 이끌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무라이의 정신수양은 서양의 눈으로 본 동양적 미로 포장되어 있다.

삶을 덧없다고 생각하며, 죽음 역시 삶 못지않게 중요한 의미를 두었던 사무라이는 남자들의 영혼이 뱃속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패배한 적장 스스로의 할복은 '잔혹함'이 아닌 '명예'의 의식이었고, 자신의 영혼을 자유롭게 하는 '해방'의 의식이었다.

삶과 죽음, 영혼과 자신의 본질을 모르는 자들에게 사단은 잔혹한 자살을 일본인의 의식 속에 명예로 둔갑시켜 무사의 전통으로 삼았으며, 영화는 이러한 사단의 메시지를 무사의 절개와 명예, 신념, 남성다움으로 멋스럽게 포장하여 사무라이 정신을 철저히 미화시키고 있다.


특히, “NO MIND - 무념(無念)”의 불교식 선 사상은 이 영화의 가장 큰 철학적 바탕이 된다.

이미 선(禪)은 종교로서가 아니라 문화로서 전 세계를 잡았다. 서구문명의 한계 속에 세계를 살릴 대안사상으로서 선 은 자연 속의 개체로서의 ‘나’를 찾는 자연 친화적 노장사상을 바탕으로 참선 등 지극히 사실적이고 실용적인 차원에서 문화로 세상과 만나고 있으며 이 영화의 일본이라는 공간적 배경 속에서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153분간의 강력한 팀사역을 하고 있다.

알그랜 대위가 검법을 배우면서 터득한 첫 원리가 바로 선(禪)의 무념 (no mind)의 원리이며 그 원리를 터득하고 나서야 그는 검 대련에서 이기기 시작하고, 그것을 위해 그 또한 자연스럽게 참선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영화의 첫 시작에 가츠모토는 참선 속에서 환상을 통해 알그랜 대위를 먼저 보는 것이나, 알그랜 대위가 'no mind'의 원리를 통해 여러 상대를 해치우는데 성공하는 것도 ‘빈 마음’을 통해 귀신이 역사함을 시사한다

또한, 영화의 첫 촬영을 엔교지의 1100년 된 신사 사원에서 시작했다는 것과 한스 짐머가 맡은 영화음악에도 옛 일본의 종교, 문화, 군사의식에 이용된 전통악기를 그대로 사용한 점 또한 영적으로 예배와 찬양에 관계있는 일본의 영성(spirit)을 그대로 전달하고자 했음을 보여준다.



즈윅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의 다른 영화에서처럼 ‘운명과 문명’을 말하면서 결국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은 주인공의 사무라이정신을 통한 과거의 치유와 그들의 삶을 통한 영혼의 안식을 말을 한다.

이것을 비단 이 영화뿐이 아닌 현재의 우리나라와 세계의 문화계가 동양적 사유와 자연친화적 선 사상을 통한 무너진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찾으려는 몸부림인 것이다.



결국, 영화 속에서 신(神)을 이해할 수 없어 교회에 다니지 않았다는 알그랜은 사무라이 마을에서 처음으로 영혼의 안식을 얻고 평안을 얻어 악몽과 가위눌림에서 해방이 되며, 자신의 명예를 지켜달라고 말을 하며 알그랜에게 자결을 도와달라는 가츠모토의 죽음의 장면은 남성들조차 눈물 흘릴 만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즉, 이 영화는 기독교 문화 안에서도 답을 얻지 못했던 영적인 안식을 일본 선을 통해 이루었음과, 생명보다 앞서는 무사도, 명예, 용기, 신념 등으로 정리되는 일본 사무라이 정신은 절대기준이 없는 자들의 폭력과 죽음 살인의 찬양을 거짓 비장미로 포장해놓고 있다.

영적 공황기에 종교가 문화로 포장되어버린 뉴 에이지 시대, 자신의 정체성을 모르는 자들에게 진정한 해답인 복음이 전 세계 문화권에 정확하게 절대적으로 선포되어야할 이유를 이 영화는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