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돔과 고모라 -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가나안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아브라함은 ‘그래도 그렇지’ 하는, 허전한 마음에 조카 롯을 데리고 길을 떠납니다.
그런데 이 작은 불순종이 늘 화근이 되어 아브라함을 괴롭힙니다.
아브라함은, 그돌라오멜과 동맹한 왕들 손에 롯이 잡혀가는 바람에, 구출 작전에 나서는가하면, 롯의 양을 치는 목자와 자신의 양을 치는 목자들과 싸움이 붙어 중재에 나서야만 하기도 했습니다.
이 때, 드넓은 땅을 바라보며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선택의 우선권을 그에게 주었고, 그 때 롯이 차지한 땅이 바로 요단의 저지대, 물이 찰랑찰랑 넘치는 비옥한 땅 소돔과 고모라, 그 옆의 소알 까지였습니다.
롯이라는 이름의 의미가 ‘가리웠다’ 이듯이 도대체 영적인 눈이 어두웠던 그는, 그저 눈에 보기에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 같지만’(창세기 13:10)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타락의 극치를 달리는 그 곳에서 부대끼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의 행사가 다 이러하니, 아브라함의 진실한 중보기도에 힘입어 유황불의 심판을 겨우 면하고 도망쳐 나왔지만 결국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두 딸과 동침하여 두 아들을 얻게 되었고, 그들이 바로, 지금까지 이스라엘에 적의를 품어 온 모압과 암몬 자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롯이 살고 있던 땅,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이 주는 교훈은, 복음의 불이 꺼져 버린 땅에는 반드시 재앙의 유황불이 덮친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그 곳엔, 하나님의 중대한 계획을 알고 있는 백성들이 살게 됩니다.
개인의 존재 이유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비밀인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리는 것이며, 더불어 후대들에게,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을 계승시키고, 민족과 열방에 자신이 받은 축복을 증거하고 전하는 데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임한 전도와 선교의 사명임을 알고 있는 주의 백성들이 머무는 땅엔 하나님의 심판과 재앙을 피해갈 수 있는 길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 중대한 계획을 개인이 놓치면 운명적 시간표에 따라 정신적 문제와 육신적 문제 속에서 갈등과 방황을 거듭하거나, 깊은 공허와 어둠과 캄캄함이 몰려와 상처와 분쟁으로 가득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민족과 세계를 바라보고 품기는커녕, 그저 개인의 문제에 묶여 집착하고 몸부림치고 발버둥 치다가 롯의 아내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소금기둥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롯과 그의 아내는, 비록 아브라함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딸들과 사위에게 이 사실을 전달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멸망의 길에서 자신들을 구원하고자 온 하나님의 천사들을 타락한 소돔 사람들이 능욕하려들자 너무 쉽게 딸 둘을 내어 주려합니다.
“그들의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소도미 sodomy : 동성연애자들을 뜻하는 말) 무론 노소하고 사방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이 저녁에 네게 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창세기 19:4-5)
‘상관할 터이니 데려오라’는 말은 - ‘Bring them out so we can have our sport with them.' (The message) - 성적으로 그들을 희롱하며 취하겠다는 뜻입니다.
이들이야말로 바로 바울이 경고한 영적인 이방인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진’(로마서 1:21) 롯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어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고(로마서 1:24)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를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여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할 뿐 아니라(로마서 1:27),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여 합당치 못한 일을 행하고 모든 불의와 추악 탐욕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소돔 사람들에게 딸들을 내어 주려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 간구하여 보호하기 보다는, 인본주의적 발상이 앞서 제 정신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너무 쉽게 저지르는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후대에게 언약을 전달하는 데 있어 소홀했는지 익히 알 수 있습니다.
더욱이 가관인 것은, 절박한 위기 상황에서 생명을 구하기 위해 소돔 성을 떠나라는 롯의 말을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고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기더라.”(창세기 19:14)
‘농담으로 여겼다’함은 히브리어로는 ’차하크‘로서 단순한 조크(joke)가 아닌 불신에서 나오는 비웃음, 조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치도 아니 한 채, 자기본위의 극치를 달리며, 자신의 눈에 보이는 기준대로 유익을 구하며 살아온 그의 인생 말로가 참 비극적인 순간입니다.
어찌됐든 유황불이 타오르고 지진이 일어나는 그 땅을 서둘러 재빨리 떠나고 볼 일이지만 롯, 그 자신도 밍기적 거리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동틀 때에 천사가 와서 어서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탈출하라고 롯을 재촉하여 말합니다. 그러나 롯은 무엇이 그리 미련이 많았던지 다리를 질질 끌며 지체하므로 천사들이 그들의 손을 꼭 잡아 움켜쥐고 끌어 당겨야 했습니다. 이를 보신 하나님의 마음이 참으로 한심하다 못해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가득했다고 성경은 적고 있습니다.
“Lot was dragging his feet. The men grabbed Lot's arm, and the arms of his wife and daughters - God was so merciful to them!
천사들의 도움으로 저주의 땅을 빠져 나온 롯은, 그 후에도 산을 넘어 멀리 도망가라는 천사의 말에 끝없이 쟁쟁거립니다.
‘내 생명을 구한 것은 감사하지만 저 산을 넘을 수 없습니다. 그 산에서 무슨 끔찍한 일이 일어나 죽을지도 모르잖아요.’
‘I can't run for the mountains - who knows what terrible thing might happen to me in the mountains and leave me for dead.'( The Message)
이쯤 되면 믿음이 가끔 오락가락 하는 우리 수준에서 봐도 짜증 날 지경입니다.
게다가 절대 뒤돌아보지 말라는 천사들의 경고를 무시한 롯의 아내는 그 자리에서 소금기둥이 되어 버립니다.
유황과 불이 비같이 내리는 그 땅에 남겨 둔 세상의 재물이 아쉬웠던지, 고개를 돌리는 그 순간 하나님의 심판이 머무르고 만 것입니다.
여기서 돌아본다함은, 그저 호기심에서 바라보는 정도가 아닌, 나바트 - 즉 재물에 대한 욕심으로 ‘골똘히 바라보다’라는 뜻입니다.
과거에 대한 집착은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을 상실한 데서부터 비롯됩니다.
- k. y. s -
'오래 이어질 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밖의 남자, 아브라함 - 그러나, 그는 선지자 (0) | 2008.05.24 |
---|---|
영혼의 아름다움을 찾아서 (0) | 2008.05.15 |
지금, 만연하는 무속(巫俗)의 실체에 대해 묻는 그대에게 - 스물여덟 번째 (0) | 2008.03.18 |
숨겨진 문제의 치유에 대해 묻는 그대에게 - 스물일곱 번 째 만남 (0) | 2008.03.01 |
사라의 웃음, 그리고 그녀의 노래 (0) | 2008.0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