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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이어질 편지

지금, 만연하는 무속(巫俗)의 실체에 대해 묻는 그대에게 - 스물여덟 번째

 

미인의 눈썹에 비견할 만큼 가늘고 아름다운 초승달이 서울의 밤하늘 빌딩 숲 사이로 애처로운 아름다움을 더하던 날이 엊그제인 듯 한데, 어느덧 잘 영근 옥수수 알갱이 마냥 부풀어 오르더니…, 어제는 쥐불놀이다, 달집태우기다 하며 떠들썩한 매스컴의 수다스러움으로 보아 이제 둥그런 보름달이 되었지 싶습니다.

 

아무리 회색구름 밤하늘 가리워도 여전 하늘 위의 하늘엔 빛나는 달…,

의연히 있을 터이니까요.

소원을 적어 하늘로 태워 올린다는 달집태우기는, 원래 달맞이하던 우리 선조들이 생솔가지 엮어 밤을 밝혔던 것인데…,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확신 없이 살아가는 우리네들이 미신적인 행사로 변질시킨 것이 아닌가 싶어 안타깝습니다.

 

세계적인 과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라는 어떤 초등학생이 훨훨 타오르는 불 앞에서 소원을 비는 모습이 가히 역설적이더군요.

과학과 논리를 말하면서도 한편 대중의 심리를 비합리적인 미신 풍조와 요행을 점치는 나태함으로, 그리고 자신들도 확신 할 수 없는 영적 세계에 대해 막연한 논리를 빌어 유희로 몰고 가는 대중매체의 행태가 안타깝습니다.

 

칠흑 같은 밤하늘에 총총히 별무리 들어설 때, 마을 앞산에 고개 내밀 두둥실 보름달 기다리며, 청솔가지 태워서 솔 내음 온 마을 가득해지노라면, 하나 둘 모여든 마을 사람 도란도란 둘러앉았을 우리네 선조의 지혜로운 정서가 그립군요.

 

 

그대, 평안하신지요.

누구나 가지고 있을 숨겨진 문제의 치유는, 소크라테스 이래로 영원한 화두가 되어온 너와 나의 정체성을 바르게 인식하고, 나아가 자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이며 사랑 받고 있다는 확신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지난 서신을 통해, 세상적인 논리와는 역시 색다르지만 완벽한 것이 하나님의 방법임을 확인하게 되었노라고 기쁜 마음으로 답신에 적어오셨군요.

 

더불어 인간은 원래 영적인 존재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찾아오는 문제들의 근본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영혼의 상처부터 치유하는 것이 순서가 아니겠느냐는 그대의 의견에 박수를 보냅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오랜 옛날부터 있어온 인류의 몸부림은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사상과 철학을 발전시켜 정신세계를 치유하려하였고 종교라는 고차원적인 활동을 통해 영혼의 세계를 좀 더 자유하고 평화롭게 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우리 조상들에게는 그것이 샤머니즘 내지는 토속종교로 전수되어 우리의 삶 속에 깊숙이 스며들었을 터입니다.

오늘처럼 모난 데 없이 둥그런 달이, 우리 마을 꼬치산 앞에 얼어붙은 겨울 하늘을 배경 삼아 떠올랐던 이 계절이, 바로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때입니다.

 

어려운 살림이었지만 어머님은 커다란 시루에 붉은 팥 넣어 정성으로 손수 떡을 지으시고는 새벽잠 곤하게 자는 나를 깨워 절하게 하셨습니다.

동네 우물물 그 누구도 퍼 올리지 않았을 때 제일 먼저 길어 올린 정갈한 정한수 한 그릇 상에 올리고 절하고 나서, 날카롭고 매서운 인생 살지 말라는 기원을 담아, 칼 대지 않고 넙적하게 떼어낸 떡 한 덩이를 말끔히 먹는 것으로 나의 생일 아침은 시작되었습니다.

 

늦둥이 막내로 태어나 변변한 참고서 한 권 사주지 못하고 공부시키는 게 안타까우셨던 어머님, 그분이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정성이자 내 미래를 위한 최대의 투자이었지 싶습니다.

 

그렇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의 미래를 막연한 존재에게 의탁해왔던 유년 시절을 통해서, 성숙해 질수록 다가오는 많은 문제들에 대해 자꾸만 미신적인 것에 의존하거나, 운명이라는 것을 당연한 숙명인 양 받아들여 스스로를 다독거리며 살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성당에 다니면서도 하나님이란 존재에 대해 너무나 막연하였던 터라, 그저 하늘에 계심으로 축복과 저주를 당신 맘대로 번갈아 내리는 무서운 심판자, 그래서 내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천주님(하늘의 주인)에 불과하였던 그릇된 인식으로 말미암아, 연초에는 토정비결로 한 해를 점치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동네 용한 점쟁이가 산다는 꼬방동네 쓰러져 가는 사립문을 드나드는 데 익숙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성실히 산다고 해서 착하게 산다고 해서 해결 될 수 없는 인생의 깊고 어두운 늪 속에서 허우적대던 나에게, 청년 예수는 다메섹을 향해 가던 살인광 바울에게 손을 내밀었듯이..., 그보다 극적이진 않지만, 나의 인생에, 아니 엄밀히 말하면 암담한 운명으로 결론지어진 나의 현실 속으로 깊숙이 그리고 구체적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렇게 만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나의 영적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나의 정신세계와 영혼을 갈갈이 찢어놓았던 바로 그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의 무한하고 광대한 세계로 나의 삶을 이끄셨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나의 거듭남은, 바울이 로마 성도에게 보낸 서신의 한 토막으로, 앞으로 전개될 내 미래에 대한 명쾌한 결론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사는 사람들은 결코 정죄 받는 일이 없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생명을 누리게 한 성령의 법이 나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 2절)

 

쉽게 말하면, 물고기가 물속을 떠나 갈급하여 허우적대듯이,

하늘을 떠나 새장에 갇힌 새가 자유함을 잃고 답답해하듯이,

그리고 뿌리 뽑혀진 나무가 흙을 떠나 죽음을 향하여 서서히 말라 비틀어 가듯이,

 

그렇게 하나님을 대적하여, 창조주를 떠난 내가 허무와 어둠과 공허로 가득한 운명의 길을 걸어야 했지만,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나의 길 되시며 진리 되시며 생명 되시어 내 영혼의 주인이 되신 그 때부터, 난 사주와 팔자와 운명에서 단번에 빠져 나와 오늘의 나…, 과거에 대한 자학 없이, 현재에 대한 염려 없이, 그리고 미래에 대한 어떤 두려움도 없이…, 하나님 그분으로부터 절대적이고 일방적인 사랑을 받아 누리며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대…, 운명을 점치고자 아니, 너무나 불투명한 미래를 미리 알아보고자 점쟁이나 무당을 찾아가는 것이 우리네 삶에 있어서 어떤 영향과 결과를 가져오는 지, 호기심이 생겼다고 덧붙이신 그대의 물음에 답하려나보니 너무 장황하게 나의 이야기를 늘어놓게 되었군요.

 

그렇지 않아도 독버섯처럼 번져 가는 점술 열풍이 일부 정치인과 기업인, 사회 문화 각층을 장악하더니 급기야는 최첨단의 과학적이기(科學的利器)인 컴퓨터 사이트를 타고 청소년들에게까지 그 영향력을 미쳐 요행심리를 조장하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며 애통해 오던 터인지라, 저의 답변이 다소 격앙된 것이 아닌 지 싶습니다.

 

전생을 다루는 영화가 한참 유행하여 귀신들의 세계에 막연한 연민을 일으키더니, 이제는 마법으로 현실을 도피하고 너무 쉽게 재미를 누리는 가벼운 정신세계로 젊은이들을 미혹하더니 급기야는 우리의 소망으로 자라나는 어린이들의 순결한 마음에 잡다한 귀신놀음을 아름답게 포장하여 친구와 나누는 소꿉놀이로 착각하게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오직 돈이면 만사형통이라는 얄팍하고 치졸한 가치관이 양산해 낸 서비스업계의 상술을 힘입어서 신문과 방송은 그들의 입맛 맞추기에 앞 다투어,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귀신들린 자를 마치 성직자인 양 사상가인 양, 얼굴 내밀어 주기에 경쟁하며, 인생의 깊은 고뇌 없이 말초적으로 살아가는 나이 어린 연예인들을 앉혀놓고 전생실험 놀이 등으로 영적인 세계를 혼미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 기회를 놓칠 세라 일백오십만 명으로 추산되는 역술인들과 점술인들은 당당하게 깃발을 꽂고 인생 상담자니, 비즈니스 카운슬러니 하며 이 땅의 문화를 귀신 문화로, 흑암문화로 변질시켜 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실체는 무엇이냐고 물어오셨죠.

우선 그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누어집니다.

 

첫째는 과거 그들의 가문에 극심하게 미신을 섬겼던 내력이 있다거나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으로 시달리다가 내림굿에 의하여 귀신들린 강신무(降神巫)들입니다.

이들은 평생을 귀신들린 자로 살아야하는 자신의 운명마저도 해결할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조상이나, 장군, 산신령, 동자로 위장하고 찾아오는 귀신들의 컨트롤을 받으며 살아가는 가여운 사람들입니다.

 

 

다음은 무속에 관한 공부나 역술을 공부하여 운명을 점치는 학습무(學習巫)들입니다. 이들 또한 자신들의 풀리지 않는 영적 문제와 삶의 문제로 고통 받고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한 학습으로 남의 귀중한 미래와 운명을 논한다는 것부터가 오류의 시작이 아니겠는지요.

 

마지막으로 완전한 사기꾼들의 집단이 있습니다.

먹고사는 문제의 해결을 위해 미래에 대한 불안과 염려에 빠져있는 이들에게 접근하여 겁을 주어서 굿하기를 강요하거나 부적으로 액땜을 해주겠다고 유혹하여 금품을 갈취하는 자들이지요.

 

실력을 갖추어 바른 생각을 해야 할 정치인들이 자기 나름의 정치철학과 가치관 하나 제대로 세우지 못한 결과, 이런 이들에게 끌려 다니고, 차근히 실력을 쌓아야 할 수험생들이 요행을 바라며 장래를 점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어느새 창가로 새벽빛이 스며듭니다.

아직도 드릴 이야기 너무 많지만 다음 서신으로 미루고 인사를 전해야 할 것 같군요.

다음엔 제가 직접 만났던 무당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삶, 또 그들에게 미혹된 자의 결국이 어떻게 되는 지에 대해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어디에선지 봄소식이 들려올 것 같은 포근한 날씨입니다.

미리 옷장을 열고 진달래 빛 봄 스웨터를 손질 해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삼월의 시작을 하루 앞둔 새벽에

그대의 영혼을 사랑하는 이로부터

 

 

 

 

 

 

- k. y. 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