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가?
- 세 번째 만남 -
“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 - 요한복음 14:6 -
지구촌을 공포로 몰아넣은 자연재해가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2005년 여름 미국 본토에 상륙한 허리케인 ‘카트리나’ 가 미국을 극도의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9.11 테러 때보다 더 많은 사상자를 내고 미국 역사상 최악의 자연재해로 꼽히는 카트리나의 피해로 ‘재즈의 도시’ 뉴올리언스는 초토화됐으며, 낭만적인 재즈선율은 비명과 울부짖음으로 바뀌었습니다.
또한 같은 해 가을 한국에 상륙한 태풍 ‘나비’도 남해안 일대와 울릉도에 큰 피해를 몰고 왔습니다.
이처럼 인류 역사에 있어 작고 큰 자연 재해는 끊이지 않았고, 문명이 눈부시게 발달한 오늘날에도 인류는 나약한 방관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강력한 태풍이 불어 닥치자 세계 최강대국의 문명도 바벨탑처럼 한 순간에 무너질 수밖에 없듯이, 아무리 잘 나가는 인생일지라도 하나님 없는 인생은 언제 좌초될지 모르는 풍랑 만난 일엽편주(一葉片舟)와도 같습니다.
우리는 고난의 때에 창조자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창조의 목적을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현실의 이익에 집착한 나머지 창조주의 작품을 우리의 편리대로 변형시키고 파괴해왔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인류에게 모든 창조물을 다스릴 수 있도록 왕관을 씌워주셨습니다, (창세기 1:28)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 살도록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이 (창세기 1:27)
하나님을 떠나 타락하면서 인간은 죄와 사단의 종노릇을 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3장)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창조물은 저주를 받게 되었고,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어 인간의 이마에 땀이 흐르게 했습니다. (창세기 3:17~19)
이때부터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을 찾지 않고 통치 대상인 창조물을 오히려 숭배하게 되었습니다.
사단은 우상을 통해 하나님을 향한 경배를 가로채고, 인간을 재앙과 저주로 몰고 갔습니다. 이로 인해 행복해야 할 인간은 행복을 찾지 못하고 고통 속에 신음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선행과 철학, 종교를 추구해 보지만 그것은 외적인 변화에 불과하고, 구원을 얻을 가치는 못됩니다,
왜냐하면 땅에 있는 그 어떤 것으로도 원죄를 해결할 수 없고, 사단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영(靈)으로 존재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육신의 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눈으로 보았다는 사람이나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하는 사람이나 모두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면서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기에 누구에게도 제한을 받지 않고 어디에든 계시며-무소부재(無所不在), 모든 것을 다 아시고-무소부지(無所不知),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습니다-무소불능(無所不能) (시편 139, 빌립보서 4:7, 이사야 40:28)
그러므로 ‘여호와’ 라 부르는데, 이는 ‘스스로 있는 자’ 라는 뜻입니다. (출애굽기 3:13~15)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므로 영이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구원입니다. (이사야 40:18~31)
만남은 인생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가 그 생을 좌우합니다.
모든 만남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가 우상숭배 하는 가정에서 태어나고 영적으로 시달리게 하는 사단에게 붙잡혀 있다 해도 지금 하나님을 만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흑암의 세력이 무너지고, 저주와 운명과 죄에서 해방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사단은 언제든지 우리를 찾아와 괴롭히고 문제 속으로 끌고 갈 것입니다.
왜 인간은 하나님을 볼 수 없을까요?
인간의 영은 육체 속에 제한되어 있습니다,
이 영혼이 육체를 떠나는 것이 죽음입니다.
그래서 영혼이 육체 속에 있을 때만 즉, 살아있을 때만 구원의 기회가 있습니다.
죽고 나면 구원의 기회는 없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6:19~31)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
영이신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14)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 비참한 상태에 있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죽음을 담보로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죄가 없고, 그 영(靈)은 하나님이십니다. (고린도전서 15:45)
하나님은 운명에서 우리를 해방시킨 분이십니다,
즉, 원죄를 포함한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해결하신 참 제사장이시며,
사단의 권세를 꺾고 해방시키신 참 왕이시며,
지옥에서 천국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참 선지자이십니다.
죄와 사단, 지옥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 단어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 란 뜻으로 제사장, 왕, 선지자의 직책을 모두 합한 단어입니다.
그는 제사장들과 왕들과 선지자들이 하지 못한 일을 영원히 해결하신 분이십니다.
그가 바로 예수입니다.
예수는 이름이며, 그리스도는 직분을 말합니다.
예수는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을 가진 분이십니다. (마태복음 16:16~19, 요한복음 14:1~9)
그는 사람의 모습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구약에는 메시야로, 신약에는 그리스도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같은 뜻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길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12)
예수님이 지금 찾아오셔서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마음의 문을 열면 예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영원토록 함께 하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20)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 우리 속에 임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요한복음 14:16, 14:26~27)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면 우리는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면서 우리에게 참 평안을 주실 것입니다.
이때, 사단의 권세는 영원히 떠나가게 됩니다.
예수님을 진실로 영접하는 기도를 드립시다.
“사랑의 하나님, 저는 하나님을 떠난 죄인입니다.
저의 모든 문제를 십자가 위에서 해결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이제 무거운 모든 짐을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지금 이 순간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합니다.
내 마음 중심에 오셔서 나와 함께 하시고, 영원토록 인도해주옵소서.
나의 인생을 주님께 맡깁니다.
감사드리며 날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로 예수님이 성령으로 우리 속에 거하시며 인도하셔서 날마다 성화(聖化)시켜 가십니다. (요한복음 14:26~27)
성경말씀을 올바르게 받을 때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됩니다.
성경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4:12)
이 말씀을 받을 때 우리의 영이 살게 됩니다. (시편 119:25)
또한 죄를 해결할 때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됩니다. (시편 66:18, 갈라디아서 5:16~18)
우리를 놓친 사단은 귀신을 시켜 우리를 방해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에베소서 5:18)
지금 이 순간도 믿음을 갖고 성령충만을 간구하면 받게 됩니다.
성령충만을 받으면 권능이 생깁니다. (사도행전 1:8)
이때 자신과 세상과 사단을 이기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느낄 정도로 하나님의 살아계신 결과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히브리서 11:1~6)
이제 요한복음 14장 6절 말씀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선행을 하지 말라는 말도, 철학과 종교가 잘못되었다는 것도 아닙니다.
원죄, 사단, 지옥의 문제는 인간이 해결하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라고 한 것입니다.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다면, 이제 모든 죄와 사단의 권세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로마서 8:2)
이제부터 새롭게 시작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빌립보서 1:6)
하나님은 항상 함께 하십니다.
그러기에 모든 문제는 다 응답의 과정이고, 축복의 기회라는 것을 명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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