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너 교회 다녀? 교회는 왜 가?
이 한심한 놈아. 교회에 뭐 있다고…. 바보 같은 놈!”
어머니가 집사님인데도 이처럼 나는 친구들 중 교회 다니는 애들이 있으면 교회 가지 말아야 될 이유를 설명하고, 권유가 아닌 강요로 교회 나가지 못하게 했다. 교회 안에서의 잦은 싸움과 갈등, 교인들의 무능력을 어릴 적부터 보고 자랐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어머니의 지나친 율법이 나를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옭아매어 그 스트레스로 미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신경질적인 행동, 예민한 성격이 만들어낸 앙상한 몸에서 나오는 날카로운 목소리는 나까지 예민하게 만들었다.
며칠은 그런가 보다 하고 기다렸지만 한 달 정도 지나도록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잠을 자기 위해 약도 먹어보고 약간의 술로 잠을 청해보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잠이 잘 온다는 수면음악을 골라 듣기 시작했다.
당연히 거의 명상 음악이었다.
70~80%가 뉴에이지 음악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수면음악을 들으면서 내게 우울증까지 덮쳐오기 시작했다. 결국 우울증 때문에 잠을 더 이룰 수 없게 되어 눈뜨고 천정만 바라보다가 밤을 꼬박 새우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환청까지 들리게 되었다.
친구에게 이런 상황을 얘기했더니 다른 음악을 권유했다.
그게 바로 힙합음악이었다.
이유인즉슨 말을 많이 하면 그만큼 피곤해서 빨리 자게 될 것이라는 친구의 이론 때문이었다.
그때부터는 음악에 맞춰 계속 랩을 중얼거리면서 걸어 다녔다.
얼마나 많이 들었던지 이때부터 혼잣말이 습관화되어 버렸다.
아직도 정신병자처럼 나도 모르게 혼자 중얼거릴 때가 있다.
이런 내 모습이 대인관계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중요한건 힙합을 듣는데도 불면증은 호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육체의 피곤은 쌓이게 되고, 수업시간에 자게 되니 학교생활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늘 선생님들에게 야단맞기 바빴다.
그러다가 학교에 대한 반발감은 쌓여 가고, 결국 선생님들에게 반항하다가 자퇴까지 해야만 하는 상황까지 가고야 말았다.
이때부터 자괴감에 빠져 분노와 자살에 대한 충동에 사로잡혀야 했다.
그러다가 어떤 피아노 음악을 들었는데 상당히 기괴한 분위기의 음악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를 사로잡아 그 곡을 계속 찾아다닌 끝에 ‘스웨디시 멜로딕 데스’라는 헤비메탈의 한 장르로, 이 장르를 완성시킨 가수 ‘디섹션(Dissection:해부)’의 ‘Storm of the light’라는 노래라는 것을 알아냈다.
디섹션의 파격적인 가사와 괴물소리 같은 흉성에 내 마음은 더욱 끌리기 시작했다.
마치 내 삶의 불만과 분노를 대신 내질러 주는 것 같은 흥분마저 느끼게 했다.
그 이후로 나는 록(Rock) 음악이라면 닥치는 대로 다 들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스웨디시 멜로딕 데스’의 장르에는 주로 악마를 찬양하는 블랙메탈계열의 노래가 많았던 것이다.
그로 인해 결국 내 영적문제는 극에 달하게 되었다.
“다 죽어버려”라는 끔찍한 환청이 들리기 시작했다.
내 삶은 낮에 꼼짝 않고 있다가 밤에 움직이는 야행성 짐승과 다를 바 없었다.
이런 내 모습이 율법과 완벽주의로 무장되어 있는 어머니에게는 이해될 리 만무하다. 어머니의 찢어지는 고성이 웬 종일 나를 따라다녔다.
하지만 날카로울 대로 날카로워진 내가 내 방은 물론 심지어 집 안의 물건까지 집어던질 정도로 광폭하게 변해가자 어머니는 겁을 먹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에 충격을 받으셨는지 자주 앓아누우시기 시작했다. 나 하나 때문에 집안 분위기가 엉망이 되어 가는 것을 보고 죽고 싶단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머니께서 아시는 분을 통해 복음을 접하게 되었다. 그 후 하나님은 내게도 복음의 빛을 비춰 주셨다.
교회를 다녔어도 내 상태는 창세기 1장 2절에 그대로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흑암 속에 있었기에 교회를 다니면서도 영적 사실을 알 수가 없었던 것이고, 그러니 혼돈에 잡혀 말씀에 집중할 수 없었던 것이며, 그 결과 공허에 빠져 복음 아닌 다른 것을 붙잡아야 했던 것이다.
종교생활 할 수밖에 없는 내게 영적문제가 오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런 내게 그리스도의 빛이 비친 것이다.
그래서 출애굽기 3장 18절의 피 언약을 붙잡은 모세가 애굽 문화를 정복했던 것처럼, 내 앞에서 흑암문화가 정복되어질 정도로 복음의 뿌리내리는 것이 지금의 나의 기도제목이다.
나를 ‘오직 복음’ 하게 하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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