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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이어질 편지

요셉, 그가 소리 내어 울었다

 

 

 

요셉, 그가 소리 내어 울었다

 

(성경을 통해 보는 복음 - 서른여덟 번째)

 

 

 

 

 

요셉이 소리 내어 엉엉 울었습니다.
'요셉이 시중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하고…, 방성대곡하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창세기 45:1~2)

배다른 형들의 시기와 냉대, 조롱 속에서도 울지 않았던 요셉
어린 동생 베냐민을 남기고 죽음을 맞이한 어머니,
라헬 앞에서도 울지 않았던 요셉

춥고 어두운 구덩이에 던져져 서서히 죽어갈 상황 속에서도
결단코 울지 않았던 요셉
타들어가는 목마름을 견디며 노예가 되어 팔려가던
사막을 걸으면서도 울지 않았던 요셉

고된 노예 살이 속에서도 해 같이 빛났던 요셉
믿었던 주인 보디발의 냉정한 오해와 심판 앞에서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요셉

언제 바로의 손에서 풀려날지 모르는 암담한 감옥 안에서도
별 같이 빛났던 요셉
배은망덕한 술 장관의 기억상실증 앞에서도 그저 담담했던 요셉
그랬던 요셉이,
그렇게도 의연하고 당당했던 요셉이 국무총리라는 영화로운 자리에서,
온 애굽 땅에 소문이 날 정도로 소리를 지르며 대성통곡을 한 것입니다.

 

 


 

십삼 년여의 고단한 삶 속에서, 요셉,

그를 든든히 지켜 준 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꿈으로 주신 약속,

곧 언약이었습니다.


볏단 열한 단이 그를 향해 절하고 해와 달과 별 들이 그에게 절 했던 것은,

그를 통해 민족과 세계열방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이 임했음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꿈을 꾸는 사람은 요셉과 같이 현실에 매이지 않습니다.
꿈이란 미래를 향한 비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은 야망과 달라서

개인의 동기나 노력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하나님이 이루어 가십니다.

 

영혼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비전이 곧 영원한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빠져 일생에 매여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사탄의 종노릇하며 진노 가운데 살아가야할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시면서 영광 본체를 버리고 이 땅에,

그리스도-기름 부은 받은 자,

 

만왕의 왕,

참 제사장,

참 선지자-로 오신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입니다.

(창세기 3:1~6, 히브리서 2:14~15, 에베소서 2:1~2, 요한복음  4:16, 빌립보서 2:6)


이 영원한 언약을 가슴과 영혼에 담고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와 온 유대와 땅 끝 까지, 살아계신 하나님의 증거를 가진 증인이 되리라 기도하는 이가 바로 요셉과 같이 시대적 언약을 소유한 자입니다.


 

이 영원한 언약과 시대적 언약을 품은 자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열방 앞에 나아갈 때, 만물이 그리스도 앞에 무릎 꿇는 증거를 보게 됩니다.

(마태복음 28:18~20, 빌립보서 3:21)

 

 

 


요셉이 이 일에 있어 증인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지혜를 입어 해석해준 바로 왕의 꿈대로 칠 년 동안의 풍작을 지나 칠 년 동안의 흉작이 시작되었습니다.(창세기 41:16)

이 때 곡식을 사러 가나안에서 온 형들을 만난 요셉은 자신의 신분을 숨겨둔 채, 아버지와 함께 고향에 남아있는 말째 아우 베냐민을 데려오게 합니다.

(창세기 42:20)


 

그러자 형제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르우벤이 나서서 아우 요셉을 노예로 팔아버린 피 값을 치르게 되었다며

다른 형제들을 원망합니다.


히브리 방언을 알아들을 리 없다고 생각한 그들이 자신의 지난날을 두고 옥신각신 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그는 잠시 그들 곁을 떠나 울었다고 성경은 적고 있습니다.

(창세기 42:24)

 

그것은 요셉의 첫 울음이었습니다.
그 후, 시므온을 인질로 잡고 형제들을 돌려보낸 요셉은 기근이 더욱 심해져 하는 수 없이 베냐민을 데리고 양식을 구하러 온 형들을 다시 만나게 됩니다.

 

사랑하는 아들 베냐민을 보내는 아버지 야곱의 심정,

전능하신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사 돌려보내주기를 구하면서도

'자식을 잃으면 잃으리라’ 는 아비의 비장한 마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요셉은 ‘노인은 생존하시는지, 안녕하신지’를 묻습니다.(창세기 43:14, 27)

 


형들이 머리를 조아려 아버지 야곱의 생존을 확인해 주자

그는 사랑하고 그리워하던 동생 베냐민, 이제는 훌쩍 커버린 베냐민을 바라보며 ‘타는 듯 하는 마음’을 억제하지 못하고 안방으로 들어가 다시 울었습니다.

(창세기 43:30)


 

그리운 마음을 숨겨두고 단 한 번, 품에 안아보지도 않은 채

동생 베냐민을 형들과 함께 고향으로 돌려보내던 요셉은

자신의 은잔을 동생의 자루 아구에 넣으라고 청지기에게 명령합니다.

(창세기 44:1~2)

그리고는 그들이 성에서 나가 멀리 가기 전에 요셉은 체포명령을 내립니다.

졸지에 도둑 누명을 쓰고 애굽의 감옥에 갇히게 될 베냐민,

이 어처구니없는 돌발 상황 속에서 형 유다는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하여,

말째 아들을 잃고 슬픔에 잠길 아버지 야곱을 위해,

그리고 다시는 자신들의 불찰로 인해 또 한 번 동생을 잃지 않기 위해

혼신을 다 해서 간청합니다.


이를 지켜보던 요셉, 그가 드디어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던 것입니다.(창세기 45:1~2)

 

 

 

 

 

 


요셉의 눈물,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그의 울음은

과거의 상처로부터 온 한 맺힌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그는 지난날을 완벽하게 잊고 있었음을

그가 낳은 두 아들의 이름에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요셉은 ‘세상의 구원’이라는 뜻을 가진 ‘시브낫 바네아’ 라는 새 이름을 바로 왕으로부터 받은 후(창세기 41:45)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아내로 맞이하여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낳습니다.

므낫세는 '하나님이 나로 나의 모든 고난과 나의 아비의 온 집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함이요,

에브라임이라 함은 '하나님이 나의 수고한 땅에서 창성하게 하셨다'는

그의 신앙고백입니다.(창세기 41:51~52)


더불어 그는 오히려 두려움에 떠는 형들을 안심시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창세기 45:5)

 

 



 

 

 

진정한 용서는 기억치도 않는 것입니다.

.....

 

.....

 


지난 일을 자꾸 끄집어내어 곱씹는 다면 그것은 진정한 용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용서 방법은 이렇습니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43:25)

 

 


용서는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본을 보여주셔야 할 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분리시키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간하는 사탄,

창세기 3장에 출현하여 아담과 하와 사이를 파괴시킨 그 뱀의 머리를 밟아버릴 메시아, 그리스도를 영원한 언약으로 주셔서 그 이름을 힘입어 그 궤계에 속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고린도후서 2:10~11)

 

 


그러면 그 문제 가운데 숨겨진 하나님의 물밑 작업,

곧 하나님의 원대하고도 은밀한 계획을 깨닫게 됩니다.

이때, 감사와 감격의 울음이 영혼 깊숙한 가운데서 터져 나올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요셉이 소리 내어 울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